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및 103위 시성식 기념행사를 위해 방문했다. 방한 기간은 5월 3일부터 7일까지였으며, 여의도 광장에서 200주년 기념대회와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諡聖式:교황이 시복(諡福)된 복자(福者)를 성인의 명부에 올리고 모든 교회에서 그를 공경하도록 선언하는 행사)이 거행되었다. 이로써 성 안드레아 김대건(金大建)사제순교자를 비롯한 한국의 성인들이 비로소 전세계 교회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또 5월 5일 어린이날 광주광역시 무등경기장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기도 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본명은 카롤 보이티야(Karol Wojtyla)이며,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출생했다. 1938년 아젤로니아대학교 철학과에 입학, 연극활동을 하며 안드레아 예비엔이라는 이름으로 시 ?희곡 등을 쓰기도 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연극배우생활에 전념하다가, 1942년 성직에 뜻을 안고 나치하에서 비밀리에 운영되던 크라코프신학교를 졸업, 1946년에 사제(司祭)가 된 후, 크라코프대학교 신학교수 등을 거쳐, 1964년 크라코프의 대주교가 되어, 1967년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가 등위 34일 만에 죽자, 그 후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탈리아인이 아닌 교황은 사상처음 455년 만의 일이다. 바오로 6세의 교회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교회 안팎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식 때 내한, 103위 복자(福者)에 대한 시성식(詩聖式)을 집례하였으며,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도 한국을 방문하였다. 1994년 11월에는 <3천 년을 맞는 칙서(勅書)>를 통하여, 교회가 과거에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불관용(不寬容)과 전체주의 정권에 의한 인간기본권의 유린을 묵인한 것은 잘못임을 인정하는, 가톨릭으로서는 진일보의 고백을 함으로써, 요한 23세 이후에 조성된 구?신교 일치운동에 한층 화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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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한국가톨릭용어큰사전』, 허종진, 한국그리스도교언어연구소, 1994.
『그리스도의 상징들』, 김종익, 가톨릭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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