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
수단은 본래 주름 접힌 긴 속옷과 함께 그 위에 입었던 고대 민족들의 남성복에서 유래되었다. 초기 교회에서 성직자들의 복장은 전례 거행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의 복장과 구별이 없었다. 6~7세기 민족 이동 이후 바지나 가죽 옷을 입었던 게르만 민족의 관습을 따라 남성복이 변경될 때 성직자들은 발뒤꿈치까지 내려오는 긴 로마 옷을 그대로 존속시켜 입었다. 검은 색은 베네딕도회의 수도복 색깔을 본받은 것이고,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중세 시대에 삭발례를 할 때 그 품위가 표시하는 성직자의 의복으로 수단이 수여되었다.
수단의 형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천되었으며, 수단에 부착하는 장식과 화려한 색상을 자제하도록 거듭 권고하기도 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제14 회기에서는 성직자의 품위에 맞는 복장을 입도록 하였는데,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세속에서 죽었다는 의미로 수단의 색깔을 검은색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위반하는 신부에게는 성무 집행 정지 또는 교회록 박탈 등의 처벌을 가하도록 정하였다. 또 1565년에 열린 밀라노 관주 주교 회의에서는 일반 성직자들은 검은 색의 수단을 입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고위 성직자들은 그들의 품위에 상응하는 붉은 색 혹은 자색 계통의 수단을 입으며, 모임에서는 검은 수단의 단에 색상을 장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큰 대회나 모임 때에는 검은 수단 위에 그들 품위에 어울리는 색상으로 장식한 ‘가마유’(어깨 망토)를 걸쳤다. 교황 식스토 5세(1585~1590)는 교황령을 통하여 명시적으로 발뒤꿈치까지 닿는 긴 옷을 성직자 복장으로 규정하고 이를 의무화하였으나, 처벌 규정은 완화하였다.
1995년에 발표된 《한국 천주교사목 지침서》에서는 “전례 예절 때에는 그 전례 규정에 따라 제의나 수단 등의 복장을 착용해야” 하며, “모든 사목 활동 때와 공적 회합 및 공적 행사 때에는 성직자 복장(수단 또는 로만 칼라)을 착용해야 한다.”(15조)고 규정하였다. 즉 수단을 입는 경우가 아니라면 양복정장에 로만 칼라를 하는 것이 정식이며, 여름에는 점잖은 모양의 노타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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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형태 |
수단은 성직자의 신분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데, 일반적으로 신부들은 검은 색(지역에 따라 여름에는 흰 색), 주교와 대주교는 자주색, 추기경은 붉은 색, 교황은 항상 흰 색의 수단을 입는다. 몬시뇰은 검은 색 수단에 자주색 단추를 달고 옷깃과 단에 자주색 천을 댈 수 있다. 수단 위에 ‘띠’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띠의 색깔은 수단의 색과 같게 하며 왼쪽으로 늘어뜨리는 띠의 끝 부분에는 술을 달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신부들이 검은 색 띠와 가마유를 착용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현재는 주교에게서만 수단 위에 띠와 가마유를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단은 목 부분부터 발목까지 30~40개의 단추가 달려 있는 고전적인 형태, 단추가 없는 형태, 그리고 단추가 달려 있지만 안에 지퍼가 있는 형태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한때 예수의 지상 생애를 상징하기 위해 수단 단추를 33개로 맞춘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수단을 입는 사람의 키에 따라 단추의 수가 다르다. 또 전에는 수단을 처음 착용하기 전에 별도로 축복식을 거행했지만, 지금은 착의식이나 독서직 수여식 때 수단을 착용하고 예식에 참여함으로서 축복된다. 수단은 성직자들만 입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 중에서도 교회 내에서 직무를 부여받은 이들, 예를 들어 시종직과 독서직을 받은 이들, 성가대 지휘자나 독창자 등도 입을 수 있다.
본 수장품은 본교내 교수 사제인 박고안 신부님께서 입으셨던 수단으로, 검정색의 모직물로 제작되었다. 폭이 넓은 수단띠가 부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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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구)』,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한국가톨릭용어큰사전』, 허종진, 한국그리스도교언어연구소, 1994.
『그리스도교의 상징들』, 김종익, 가톨릭출판사,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