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스티노신학교 설립으로 남쪽 지방 학생들과의 작별(1914.6.20). 여름방학을 맞아 대구신학교로 떠날 신학생들과 서울에 남는 신학생들간에 이별식을 거행하고 기념 촬영 |
신학생들과 산책 중인 라리보 주교와 이기준 신부(1927) |
차부제품 수품 기념(1929.5.25) |
사제수품 기념(1930.10.26). 왼쪽부터 윤형중, 방유룡, 노기남, 신인균, 이복영, 양기섭 신부 |
용산 신학교 교수 및 신학생들(1929년경) |
뮈텔 대주교 집전 마지막 사제서품 기념(1932.12.17). 왼쪽부터 윤을수, 유영근, 임종국, 오기선, 조인원 신부 |
제6대 교장 기낭 신부 회갑 기념(1932.11.4). 라리보 주교와 교수신부들, 신학생들이 기념으로 찍은 사진. 신학생들은 노기남 주교 동기와 오기선 신부 동기 들이다. |
제7대 교장 시잘레신부와 용산 신학교 학생들(1939.10.23) |
용산신학교 최후의 서품식 주인공들(1942.2.14). 일제에 의해 예수성심신학교가 문을 닫기 이틀전 거행된 서품식 기념 촬영. 앞줄 왼쪽부터 박성춘, 선종완, 둘째줄 왼쪽부터 최상준, 이문근, 방영석, 김병호, 맨 뒤줄 왼쪽부터 김철규, 조응환 신부 |
예수성심신학교 최후의 순간(1942.2.14). 국내의 모든 무허가 학교를 폐교한다는 총독부의 결정에 따라 1942년 2월 16일 예수성심신학교는 교육을 중단해야만 했다. |